[이 글을 쓰게 된 계기]
나는 개발 비전공자이다.
최근 '원티드 - 12월 커리어 킥오프 이력서 부수기'를 들었다.
기존 경력과 개발 경력 사이의 연결성을 포기하지 말라는 말에 기억을 더듬다가
호텔에서 보낸 시간과 경험을 다시 분명히 기억하고 싶어 글을 적게 됐다.
[약 3년 3개월 간 호텔에서 해결한 문제들]
Lv.0 호텔리어
-> 내 원래 전공은 '관광학과'이고, 운 좋게 교직이수를 하여 관광 정교사 2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학교를 졸업하기 한 달 전쯤, 마찬가지로 운이 좋게 호텔리어 생활을 바로 할 수 있었다.
오픈한지 몇 달 안 된 호텔이었고, 나는 막내였다.
호텔의 프론트데스크 직원은 OJT기간 체크인을 받지 못한다.
이 기간에 할 수 있는 것은 응대매뉴얼이나 객실 관리 시스템 매뉴얼 등의 문서를 외우는 일이나
프론트 데스크에서 선배들이 체크인 받는 것을 지켜보거나, 복사용지를 채우고 카드 단말기 빌지를 채우고,
볼펜을 정리하고, 데스크를 청소하는 등의 일을 한다.
특급호텔 출신의 일 잘하는 선배님들 사이에서 부족했던 나의 첫 인상은 당연히 별로 좋지 못했다.
OPIC - 'AL'을 가지고 자만했던 내 영어 실력은 현지 유학을 다녀온 선배님들 성에 차기엔 부족했고,
조금은 폐쇄적인 시스템과 분위기는 날 더 주늑들게 했다.
초반엔 실수도 많이 했고, 혼나기도 많이 혼났다.
데스크를 닦으며, '내가 이러려고 호텔에 왔나' 생각하기도 하고,
객관적으로 잘못한 사람은 위로를 받고, 사고를 수습한 사람은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혼이 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책임질 사람이 명확하지 않아 책임질 방법을 스스로 생각해야내는 때도 있었다.
내 커리어 첫 시작 연봉은 '2000만원'이었고, 나는 그 돈에 기뻐하며 계약서에 싸인했었다.
첫 사회 경험 시작은 생각만큼 달콤하지는 않았다.
Lv.1 호텔리어
-> 내가 일했던 호텔은 장사가 정~말, 정~~말 잘 되는 호텔이었다.
여러 가지 특수성이 결합돼서 여름이면 각 기업에서 휴가를 왔고,
봄 가을엔 커플과 인바운드 고객이 찾았다. 겨울엔 쉬는 날이 많고 날이 추워서 방문객이 많았다.
최대 약 700~800명이 수용되는 객실 점유율 평균 60%, 공휴일 만실, 주말? 만실, 성수기? 만실
나는 반드시 성장해야하는 상황이었다.
갑자기 각성하는 소설 속 레벨업은 존재하지 않았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팀에게 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고,
팀적으로는 1명의 구멍이 퇴사 의욕을 만들어냈다.
열심히 잘 웃고, 최대한 친절하려했던 내 노력의 보상이었는지 4개월째의 어느 날 나는
연봉 20%가 상승한 계약서에 싸인했다.
내가 이 시기에 가졌던 마음 가짐은 다음과 같다.
1)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 분리하기
->
[1개월 차]
할 수 있는 것: 물품 딜리버리, 객실 내부 문제, 데스크 청소, 체크아웃, 객실 카드 관리, 작은 컴플레인 응대
할 수 없는 것: 결제와 전산 처리, 체크인, 예약 생성, 객실 배정
2) 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하면 더 잘 또는 더 깊게 할 수 있는지 고민하기
-> 예시
객실 내부 문제: 문제 발생 빈도 높은 케이스 별로 정리하기(공통 비밀번호, 리모콘 매칭 방법)
딜리버리: 인사 멘트와 목소리톤 상황 별 정리(여고객, 남고객, 커플, 가족, 어른), 서있는 위치, 시선 방향, 노크 횟수 등 디테일 고민
3) 할 수 없는 것은 왜 할 수 없고,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는지 배우기
-> 예시
결제와 전산 처리:
이유) 복잡한 케이스를 완전히 숙지하지 못함
방법) 매뉴얼보고, 생각하고, 그럼에도 모르겠으면 정리해서 질문하기
객실 배정:
이유) 선배들이 믿지않음
방법) 배정할 때 옆에서 지켜보면서 궁금한 점 묻고, 메모하기
4) 고객에게 늘 웃고,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생각하고, 조금 더 친절하게 응대하기
짐이 많은 고객: 문 밖 이동 - 인사 - 열어드리기 - 입장 도움 필요한지 여쭈고, 필요하다면 3개 이상 = 카트 | 2개 이하 대신 들어드리기
Detail
체크인 전)
문 닫음 - 고객보다 살짝 느리게 걸으면서 데스크 도착 - 동선 방해하지 않게 고객 뒤편으로 짐 이동 - 오른쪽 대기
체크인 후)
뒤도는 순간에 맞춰 짐쪽으로 이동 - 눈 인사 - 거절하는 경우 아니면 엘레베이터까지 살짝 뒤에서 이동 - 엘레베이터 먼저 잡기 -
고객 탑승 이후 가시는 층 여쭙기 - 버튼 누르기 - 고객 잡기 편한 위치로 짐이동 - 마무리 인사
5) 선배들 선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실수만 하기
a. 선배들 보며 실수하는 케이스 메모
b. 실수를 하면 객관적으로 작은지 큰지 판단
c. 판단이 안 됨 -> 즉각 실수 내용과 해결 법에 대하여 질문 또는 보고
d. 판단이 됨 ->
d1. 작은 건: 실수 내용 정리, 뒷 수습 후 질문 또는 보고
d2. 큰 건: 즉각 정리 보고
5-1) 그러나 돈 관련 실수는 절대 하지 않기
그러나 발생 시 대처에 대해서는 고민을 정말 많이 했다.
내 착오로 인한 결제 실수: 케이스 별 해결 법 정리
타인의 착오로 인한 결제 실수: 5번으로 이동
Lv.?? 호텔리어와 대재앙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재앙들]
-> 위의 마음가짐을 더하고 빼다보니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새 해 첫 날 2명이서 근무하는 체크아웃 피크시간에 기계식 주차가 고장이 나는 경우나
한 겨울 만실 날 갑작스런 난방기 이상으로 객실 반절이상 히터가 고장나는 경우 등을 겪으며 나름 1년차 호텔리어가 되었다.
이쯤의 배정 관련 디테일은
2~3일 내 객실 가동률, 예약 사항 파악하여 우선 순위(연박, 일행, 단체, 기념일, 선호 등)고려까지 변화해있었다.
1년 동안 개인적인 성장의 디테일을 깎아나가다보니 이젠 팀으로 눈을 돌아가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들과 정이 많이 쌓여서, 이 사람들이 나로인해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야가 점점 넓어지면서 문제는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것과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나뉘기 시작했다.
대재앙의 시작이었다.
[대재앙 목록]
1) 100객실 이상 온수 사용 시 온수 온도 급감
원인: 보일러 설비적인 문제
대처법: 시설팀에게 이슈 전달
해결법: 주보일러 하나 더 설치
2) 주차
원인: 법적효용 댓수에 딱 맞는 주차장 보유
대처법: 이중주차, 인근 무료 주차 공간 안내 등
해결법:
a. 주차장 증설
b. 인근 주차장 섭외 -> 발렛 직원 필요
3) 냉난방기 소음
원인: 날씨 추우면 나는것으로 추정, 불특정 객실 또는 복도 발생
대처법: 시설팀 이슈 전달, 객실 교체 또는 층 교체
해결법: 냉난방기 점검 및 교체
...
그렇다.
대재앙은 호텔이 지어질 때부터 생겼거나 설계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해서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들'처럼' 보였다.
선배들은 이미 저 문제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고민하기를 포기한 상황이었다.
시설 팀분들은 문제를 궁금해하는 나를 달가워하지 않으셨다.
1)의 경우 제어실에서 보일러 온도가 너무 이상해서 시간 별로 기록하는 것을 부탁하거나 시스템에 대해 질문할때도,
3)의 경우 소리를 녹음하고, 소리가 나는 지점을 파악해서 정리해서 전달할때도,
'원래 그래요.', '~~때문이라 어쩔 수 없어요' 등의 말을 들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시설팀의 일을 궁금해하는 프론트데스크 직원은 지금생각하면 충분히 이상한 사람이 맞긴 하다.
그저 나는 팀원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해결하지 못할 문제들로 욕을 먹는 상황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었다.
간곡히 부탁해서 점검받은 보일러는 보일러 이상이 맞았다. 지하에 설치된 펌프 쪽에 문제가 있었다.
주보일러 설치가 아니라 보조 보일러로 설치하면 예상 예산보다 3배는 더 저렴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
냉난방기는 내가 찍어서 정리하여 전달한 지점들의 고압, 저압 펌프가 반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몇 번의 방문으로 냉난방기는 거짓말 같이 조용해졌다.
그래서 조용히 다짐했다.
아 이거, 재앙을 해결 못하면 팀원들을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해줘야겠다고
[스트레스를 줄이는 시스템 구축]
호텔 일을 하다보면 관리해야할 문서가 정말 많다.
수기로 적어야하는 것도 많고, 여기저기 데이터가 흩뿌려져있기도 하다.
관리해야할 OTA 계정들을 예약실에 물어보고, 전달받아야하는 경우도 있다.
코드를 치고, 프로그램을 짤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불행히도 이때의 나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문제를 정의하고 분류하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1) 로그북, LOST and Found List 등 수기 작성 서류
불편한 점:
a. 오래된 기록을 찾기가 힘듦.
b. 글씨를 못쓰는 사람의 기록을 읽기가 힘듦.
c. 특정 서류는 처리 과정에서 타이핑과 수기를 번갈아가면서 해야함.
d. 손글씨를 써야함.
...
예상 해결법:
1. 관리 시스템 내 메모 사용 -> 스킵하는 직원이 있거나 누가 알림을 꺼버리면 대응할 수 없음.
2. 엑셀 파일로 정리 -> 관리해야할 엑셀 파일이 지속적으로 증가함. 이미 프론트 내부 엑셀파일이 많음.
2) OTA 어카운트 관리
불편한 점:
a. 예약실 퇴근 이후 대처 어려움.
b. 계정 관련 엑셀 시트를 매 월 받아야함.
c. 예약실 업데이트 시 즉각 전달이 안되는 경우 일에 지장이 생김.
...
열심히 'G'선생님을 찾던 와중에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아 그냥 'N'이나 'G' 같은 플랫폼 계정으로 동시에 3개 로그인하면 어떨까"
'G'사 계정을 파서 테스트해보니 북마크, 로그인이 유지가 되는 것을 확인한 나는
객실 팀장님과 예약 실장님 컨펌하에 세 컴퓨터에서 예약실 계정 로그인 -> 계정 동기화를 클릭하여 2번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이 일을 빌미로 팀장님과 선배들에게 이런 저런 문제점으로 이번엔 수기 문서들을 전자 문서들로 대체하고 싶다고 설득했다.
사실 '구글 스프레드 시트'를 사용해서 혼자서 형태는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첫 페이지에는 내가 분류를 새로이 한 이유, 기존 문서가 가진 문제점들을 적었다. 그리고 새로이 분류된 문서들의 시트 링크를 넣었다.
두 번째 페이지에는 내가 호텔에서 일하며 겪은 문제들의 종류 그리고 해결법이 적힌 시트 링크를 넣었다.
세 번째 페이지에는 호텔에서 자주 연락해야하는 업체들의 연락처가 적힌 시트 링크를 넣었다.
후배들은 시트들을 보자마자 찬성했다.
선배들은 우려되는 문제점들에 대해 물어보았고,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을 듣고는 찬성했다.
팀장님은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신다고, 완성을 장려하셨다.
이렇게 문제들을 마주할때마다 어떻게든 해결하다보니 퇴사즈음에 나는 처음과는 다르게
사람들이 꽤 좋아하는, 믿을 만하다는 이야기를 듣는 직원이 될 수 있었다.
진짜 대재앙 '코로나'
서비스나 외식산업에서 코로나는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호텔에서의 퇴사는 조금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시간을 보내던 중 인연이 닿아 '코로나 임시 격리 시설'로 사용되는 호텔에서 일하게 된다.
매일 자정이 되면 방호복을 입고, 프론트데스크로 내려가서 마감을 돌려야하는 상황에는 '구글 원격 데스크톱'으로 본부 컴퓨터와 프론트 컴퓨터를 연결하여 원격에서 마감을 돌릴 수 있게 하였고, 밝힐 수 없지만 동일한 내용을 여러 개의 부처에 문서 형식으로 나뉘어진 문제나 매일매일 수기로 기록하는 현황판을 파이썬을 통해 만들어보다가 결과물 완성도에 좌절하는 경험도 겪었다.
여러개의 인증 어플로 인한 혼란이나 각 종 문제들이 누군가의 코드로 해결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이거, 코드를 칠 줄 알면 문제를 해결하기 더 좋겠다
[마치며]
글에는 미처 적지 못한 여러가지 운과 상황이 겹쳐진 선택과 결과이지만 대학 졸업 이후 약 5년 간 난 이런 삶을 살았다.
"이력서에 호텔에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했고, 소통하기 위해 팀을 위해 이런 것을 했어요."를 적기 위해서 시작한 글이 생각보다 많이 길어져서.. 이력서에 이걸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글을 통해 내가 다시 깨닫게 된 것은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생각보다 운이 많이 좋았다는 것이다.
상황에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답지가 제한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내 행동이 선을 넘었을 경우도 분명 존재했을 것인데 좋게 받아준 사람들 덕분에 그 와중에도 조금 괜찮은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늘 잊지 말아야겠다.
아, 선배님들은 다 좋은 사람들이다.
여기에는 적을 수 없지만 인간적으로 성장하는데에 도움이 됐고, 퇴사 후에도 간간히 연락하며 지낸다.
내년 이맘은 조금은 더 행복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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